2022.03.10. - 2022.03.16.
Tya gallery 해방촌
기보경은 작가의 내밀한 기억 너머 무의식의 영역에 뿌리내린 감각들을 종이 위로 불러온다. 2019년부터 이어진 드로잉 연작의 시작점이자 작가의 신체 표면에 드러난 피부질환은 수년간 그 모양을 바꿔가며 작가의 왼쪽 날개뼈 아래 흔적을 남겨왔다. 이 비정형적 얼룩은 그의 몸체에 기생하는 작은 생명체처럼, 때로는 그의 감각을 지배하는 예민한 촉수처럼 존재하며 작가에게 결코 영구적으로 사라질 수 없는 기억들을 상기시킨다. 작가는 온전히 마주할 수 없는 등 뒤의 얼룩을 더듬으며 개인이 통제, 예측할 수 없었던 과거의 기억들과 얼룩을 동일시하는 듯하다. 그의 초기작에서는 통제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불편함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마주할 수 없고 마주하기 싫어 외면해온 일종의 기억의 조각들을 작가는 평면의 종이 위에 유기체처럼 그려 놓거나 프레임 안에 박제하듯 가두어 관찰한다. 이 과정을 통해 작가는 무의식의 영역에 자리 잡은 낯설고도 낡은 기억들에게 형상을 부여했으며 비로소 그의 작업의 본질적 근원과 마주했다고 보여진다.
tya gallery에서 개최하는 개인전 《떨어진 것들의 행방》에서 기보경은 조각 이미지를 깊이 천착하는 대신 관찰자의 시선을 취한다. 이번 신작에서 그는 기존의 사유 대상이었던 조각의 생장점, 증식, 난상 풍경 등 개인의 내부로 향하던 에너지를 외부로 돌려 몸체에서 탈락하게 된 조각들의 행방을 주시한다. 작가는 그만의 독창적 조형언어로 내면의 형상을 종이 위로 불러오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이를 통해 작가는 사적인 내러티브의 반복적 발화가 모호한 실체를 더욱 선명하고 가깝게 만들기보다 실체와 작가 사이의 일정한 공백을 만들어 자아에 대한 객관적 시선을 획득할 수 있음을 경험하게 된다. 작품은 작가에게서 떨어져 그만의 주체성을 가지게 되었을 때 비로소 관람자는 작품 감상을 통한 구체적인 경험을 얻는다. 기보경은 이번 전시에서 몸체에서 탈락한 조각의 행방을 상상하고, 외부 세계로 시선을 옮기며 예술가의 사적인 내러티브에서 출발한 미적 발화의 새로운 가능성과 경험의 보편성을 실험한다.
전시서문_백예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