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02 - 11.07 
사이아트스페이스

이미지로부터 읽어내는 감각하는 몸, 그리고 인식하고 상상하는 주체에 대하여   

   기보경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무언가 구체적 형체를 알 수 없는 특이한 여러 이미지들에 대한 드로잉 작업들을 보여주게 된다. 작가는 이러한 작업이 자신의 왼쪽 날개뼈 아래 피부의 얼룩으로부터 시작하게 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작가노트를 보면 작가는 이 피부에 얼룩이 생긴 부분을 만지게 될 때 ‘어쩐지 습하고 끈적한 기분에 휩싸인다’라고 말하면서도 이 얼룩이 자라남에 따라 자신에게 회화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가져오게 되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언급은 자신에게 있어 피부는 감각을 수용하는 지점이었는데 여기에 일정한 변화가 생기게 되자 이로부터 파생된 여러 가지 느낌들은 이미지를 상상하고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도 밀접하게 작용하였으며 이후 자신의 작업에서 많은 관점의 변화를 가져오도록 만들었고 이는 현재의 작업을 해나가는 과정에서도 작업에 대해 사유하고 발전시켜 가는데 있어 본질적인 토대가 되고 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에서 감각에 대해 재발견하게 되면서 이것이 자신의 작업을 구상하는 작가적 상상력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때 작가가 자신의 작업에 특별히 피부로부터 상상할 수 있는 이미지들을 그려내게 된 것은 촉각적 감각과 시각적 감각을 연결시켜 공감각적 인식 방식에 의해 자신이 느끼게 되었던 감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와 관련하여 작업노트에 언급한 것처럼 작가가 몸의 일부에서 느꼈던 ‘습하고 끈적한 기분이라는 것은 사실 어느 한 가지 감각기관에 의해서 느껴지는 것이라기 보다는 온 몸이 느끼게 된 감각임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작업에서 이를 단지 시각적 방식으로만 표현하는 것은 자신이 느꼈던 느낌과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의 상상력을 개입시켜 피부의 시각적인 면들과 촉각적 느낌이 혼성적으로 표현된 작업들을 시도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변화된 시각은 작가에게 있어 자신이 그려낸 작업들이 피부를 지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다른 자연 속 어떤 부분이나 풍경의 일부처럼 보이기도 하게 함으로써 중의적이고 복합적인 느낌을 담아낼 수 있도록 만들었던 것 같다. 작가 역시 자신의 작업 속에 나타나는 이 유기적 형태에 대해 어느 정확한 무엇이 아니라 ‘정체 불명의 씨앗’ 같다고 보면서 ‘생장’, 혹은 ‘증식’이라는 개념을 부여하거나 ‘난상 풍경’이라고 지칭하기도 하였다. 작가는 자기가 느꼈던 느낌들을 자연의 생물들이 생장하고 증식하는 현상과 연결시켜 일종의 인간 내면의 심리적 풍경들을 그려내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기보경 작가가 그려낸 작업들 속에 보이는 이미지들은 처음에는 피부의 일부분이나 자연의 일부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날카롭거나 거친 느낌으로 변모하기도 하고 축 늘어지는 알 수 없는 유기체의 조직과 같은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작가는 인간 외부의 피부의 이미지로부터 인간내면의 심리적 풍경까지, 그리고 거시적 자연의 모습으로부터 미시적 유기물질의 느낌에 이르기까지 극과 극이라고 할 수 있는 이미지들을 서로 충돌시키거나 절충적으로 혼합하여 잘 표현해내고 있다. 그래서 작가가 그려낸 이미지들에는 몸의 피부로부터 전달된 다양한 감각과 정서적 상황에 대한 진폭이 어떠했는가를 상상해 볼 수 있는 부분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인간이란 외부 세계로부터의 전해진 감각 정보에 의해 그려지는 다양한 내면 풍경을 기억으로 저장함으로써 이를 토대로 세계에 대해 반응하고 판단하며 살아가는 존재일 것이다. 그런데 기보경 작가는 몸이라는 감각의 통로 자체에 주목하면서 이로부터 거리 두기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 몸 자체의 위치와 동일시하기도 하면서 상상적 이미지를 만들고 이 이미지들을 변주해 감으로써 역으로 감각한다는 것과 외부 감각기관인 몸, 그리고 이를 인식하는 주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통찰하고자 하였던 것 같다. 그러므로 작가가 화지에 검은 흑연가루로 남겨낸 상상적 이미지의 풍경들은 결국 작가에게 있어 이러한 작업을 통해 감각하는 자신의 몸을, 그리고 감각으로부터 상상하게 되는 주체로서의 자신을 확인하기 위한 일련의 기록이자 흔적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_이승훈 (미술비평)      
Back to Top